지렁이

 

 

  그 옛날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내가 천상에서 지구
의 기후를 다스리고 인간이 영물로 여기던 용이었던 역
사적 사실은 남아있지 않다. 단지 토룡으로 불러지는
이유에서 조금이나마 위안을 삼고 있지만, 내가 그 화
려한 인생을 접고 지렁이로 땅속을 헤집고 다니는 데는
한때 지구가 사막과 황무지로 황폐해질 무렵 살아있는
땅이 없는 지구에서 화려한 인생은 무의미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구에서 생산해 내고 있는 어마어마한 토양
들은 기름진 것임에 틀림이 없다. 지구상에 엄청난 유
기성물질들을 처리하는 우리들의 소화기능은 그 옛날
입에 물고 다니던 여의주, 그것이 나누고 곱하고 더하
고 빼는 과학이고 철학이었던 것을 아는 이는 없다.
  우리가 있는 한 지구는 멸망하지 않는다. 사막에 접
근하고 있다.